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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비전 프로 리뷰 | ‘미리 만나는’ 미래 공간 컴퓨팅 세상

Jason Cross | PCWorld 2024.02.20
ⓒ ITWorld

애플의 비전 프로(Vision Pro) 공간 컴퓨터는 패스스루 영상과 손/눈동자 추적을 지원하는 VR 헤드셋이다. 하지만 흔한 VR 헤드셋 중 하나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고화질 디스플레이가 달린 '훨씬 비싼' 메타 퀘스트 3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실제로 필자가 지난 몇주동안 매일 애플 비전 프로를 사용해 보니 이 기기의 가치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제품이 될 것이라는 직감말이다. 그리고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정말 멋진 기기가 되겠는걸, 언젠가는 말이지"

이 제품의 한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제품의 진정한 가치가 바로 지금이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비전 프로를 사용한다는 것은 타협과 비효율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접점을 찾는 과정이다. 콘텐츠를 즐기는 기능 자체에도 단점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비전 프로를 사용하다 보면, 조금 더 가벼웠더라면…, 덜 비쌌더라면…, USB-C 기기를 직접 연결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앱이 있었다면…, 앱의 완성도가 더 높았다면…, 끊임없이 아쉬운 점이 떠오른다. 제품을 처음 받아서 실행한 후 초기의 놀라운 순간이 지나가면 (때로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이 기능은 언제 되는거야? 이건 왜 안돼?,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결국 필요한 작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 맥이나 아이패드, 아이폰을 집어들게 된다.
 
ⓒ Foundry

비전 프로의 이런 단점 중 일부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는 하드웨어와 관련된 문제다. 결과적으로 당장은 이 머리에 쓰는 비싼 컴퓨터를 구매하라고 추천하기 어렵다. 애플 제품에 열광하는 얼리 어답터가 아니라면 말이다.
 

놀랍지만 한계가 뚜렷한 하드웨어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미 애플 비전 프로의 사용자 시점 화면이나 리뷰 영상을 여러 개 찾아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상이나 사진으로는 비전 프로의 사용자 경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직접 이 제품을 착용해 경험한 애플의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는 색정확도나 색감, 다이내믹 레인지 등이 놀라울 만큼 훌륭하다. 픽셀이 전혀 보이지 않고 스크린 도어 효과(screen door effect, 해상도가 낮아서 화소 사이에 검은 격자무늬가 보이는 것)도 없다. 특정 조명하에서는 렌즈에서 약간의 반사가 나타나지만 다른 헤드셋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적다.

메타 퀘스트 3 같은 기기와 애플 비전 프로로 보는 콘텐츠를 비교하면 마치 오래된 1080p TV와 최신형 4K HDR OLED 화면의 차이 정도다. 애플은 이를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는데, 포비티드 렌더링(foveated rendering)이 대표적이다. 전체 화면 중 사용자가 바라보는 일부분만 최고 화질로 렌더링하고 나머지는 약간 흐릿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사람의 눈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애플은 디지털 크라운을 즐겨 사용한다. 아이폰에도 언젠가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 Foundry

추적 기능은 마치 마법처럼 작동한다. 비전 프로를 쓰고 화면에서 어떤 요소를 응시하면 즉시 해당 요소가 강조된다. 이 상태에서 손가락을 꼬집는 동작을 하면 선택이 된다. 이때 손은 편안하게 아래 쪽에 놓아도 상관없다. 사용자 앞쪽 허공을 좌우로 넘기거나 찌르는 과격한 동작이 필요 없다. 바로 옆에 다른 사람이 있어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내가 무슨 동작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비전OS가 화면 내에서 상호 작용하는 주요 방식이 바로 이 "응시하고 꼬집는다"이다. 이는 기술적으로 매우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한계가 있다. 지난 수년간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다보니 한 손당 하나의 터치만 가능하다는 것이 마치 제약처럼 느껴진다. 화면 속 한 요소를 계속 응시하는 것도 약간의 적응이 필요하다. 흥미가 가는 사물을 응시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하지만 동시에 시선을 돌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비전 프로에서는 이 후자를 의식적으로 자제해야 한다. 즉, 어떤 인터페이스 요소를 실행하려면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그 요소를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조명 스위치를 끈다고 생각해보자. 보통은 손이 스위치를 향해 정확히 움직일 정도만 응시하고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비전 프로는 스위치를 끄는 동작이 완료될 때까지 스위치를 계속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비전OS 내에서 앱을 실행한 창을 사용자 시선에 더 가깝게 가져오면, 문자그대로 이 창을 직접 터치해 스와이프할 수 있다. 단지 촉각 피드백이 없을 뿐이다. 이는 마치 유령과 싸우는 느낌이다. 현재 상태로도 놀랍도록 잘 작동하지만 한두 세대 더 발전하면 훨씬 더 직관적이고 유연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패스스루 영상도 비슷하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바라보는 영상의 화질은 비슷한 헤드셋 제품 중 가장 뛰어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좋은 것은 아니다. 애플은 포톤인-포톤아웃(photon-in-to-photons-out, 반응 속도) 지연시간을 12밀리초 혹은 그 이하로 구현했지만, 밝은 곳을 제외하면 영상에 노이즈가 나타나고 색상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필자의 집은 많이 어두운 것도 아닌데, 일상적인 조명에서는 색이 충실히 재현되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많은 조명을 켜야 제대로 보였다.

반면 스트랩에 내장된 작은 스피커의 음질은 놀라울 만큼 훌륭했다. 볼륨을 높이면 주변사람에게 들리는 문제가 있지만, 외부를 바라볼 때 주변의 소리와, 비전 프로 앱을 사용할 때 나오는 공감 음향을 함께 듣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에어팟 프로를 사용하면 내가 보고 있는 콘텐츠의 소리를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이렇게 하면 주변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게 되는 단점이 있다. 즉 결과적으로 고립된 몰입형 경험에는 최적이지만, 증강현실 측면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셈이다.

스트랩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한다. 듀얼 루프 밴드는 헤드셋 무게를 골고루 분산한다. 라이트 씰은 착용감이 좋고 외부의 빛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반면 부착되는 마그네틱 자력이 강하지 않아서 라이트 씰만 잡고 비전 프로를 들어올리면 자칫 비전 프로를 바닥에 떨어뜨릴 수 있다. 애플 역시 라이트 씰이 아니라 전면 디스플레이를 잡고 비전 프로를 사용하라고 안내한다.

비전 프로의 무게는 600~650g이다. 무게 자체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무게를 머리 전체가 아니라 얼굴 앞면으로 지탱해야 하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제품을 착용하면 라이트 씰에서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애플은 플라스틱에 대해 '집착적인 거부감'으로 알루미늄과 유리를 사용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구현했지만, 150~200g 더 가벼워질 수 있다면 필자는 플라스틱 제품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비전 프로 전면 전체는 광택이 상당하다. 그래서 정작 전면 디스플레이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고 비전 프로의 대표 기능인 '아이사이트(EyeSight)'도 선명하지 않다. 아이사이트는 분명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결과적으로 애플이 광고한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품을 복잡하게 만들고 가격을 올리는 역할만 하는 느낌이다.

외장 배터리의 경우 불편해 보이지만 방향은 잘 잡았다고 본다. 실제 사용할 때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고, 머리에 쓰는 헤드셋에서 무언가를 빼내 무게를 줄이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기기에 통합되겠지만, 향후 몇년 동안은 배터리 팩을 밖으로 빼 헤드셋을 더 가볍게 만드는 것이 유행할 전망이다. 이 배터리 팩에는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능이 전혀 없다. 배터리 팩에 USB-C 포트가 달려 있지만 오직 전원을 공급 받는 역할만 한다. 여기에 다른 주변기기를 연결해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반면 애플은 디벨로퍼 스트랩(Developer Strap)을 300달러에 판매한다. 기존 오디오 스트랩 자리에 갈아 끼울 수 있는 제품으로 USB-C 동글이 달려 있어서 이를 통해 애플 비전 프로와 맥을 직접 연결할 수 있다.
 

미완의 소프트웨어

비전 프로를 둘러싼 소프트웨어 상황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걸음마 단계'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지난 수십년간 세계 최대이자 세계 최고 시가총액 지위를 누려 온 애플도 비전 프로라는 신제품의 앱과 인터페이스의 제약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몰입형 영상과 일부 게임 등 높은 완성도를 지난 앱도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이 공간에 떠다니는 '아이패드 창' 정도로 느껴진다. 설사 아이패드에서는 쓸 수 없는 비전 프로 전용 앱이라고 해도 말이다.

앱 창도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지만 맥에서 보는 것을 그냥 키워 놓은 것처럼 보인다. 서드파티 앱은 대부분 아이패드 앱이고, 비전OS 전용 앱은 채 1,000종이 안 된다. 그마저도 급조된 것처럼 느껴진다. 종종 오류가 발생했고, 단지 아이패드 앱을 공간에 떠다니는 창으로 약간 수정한 것에 불과한 것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공간' 기능도 조잡하다. 예를 들어 캐럿 웨더(Carrot Weather)는 훌륭한 앱이지만 아이패드 앱과 차이가 거의 없다. '지구본 보기(full globe)' 팝업 기능을 실행하면 '멋진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실제로 유용한가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차라리 사용자가 실제 주변이나 하늘을 바라볼 때 등압선과 강수량 같은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캐럿 웨더는 '공간' 앱이지만 아이패드나 맥 버전과 차이가 거의 없다. ⓒ Foundry

실제로 비전 프로의 경험 대부분은 앱을 실행한 떠다니는 창을 사용자 주변 특정 위치에 고정해 쓰는 것이다. 이 기술적인 성취를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창은 놀라울만큼 또렷하고 생생하게 내 주변 환경의 일부로 나타난다. 동시에 실세 세계에서 적절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평평한 창의 하단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물론 단 1mm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창은 항상 사용자가 아니라 특정 위치를 기준으로 고정된다. 이동하면서 창이 사용자를 따라다니도록 하려면 창의 아래쪽에 있는 작은 막대를 '문자그대로' 집은 채로 움직여야 한다. 실제로 필자는 비전 프로를 테스트하면서 실행 중인 앱의 창을 찾지 못하는 기이한 경험을 종종 했다. 그 창이 다른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처음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사파리 창이 있는 방을 찾는 경험은 특별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짜증스럽다. 창을 거실에 고정하는 대신 창 막대를 더블 핀치해서 해당 창을 사용자에게 고정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비전OS 2.0에 이 간단한 기능이 추가된다면 꽤 획기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또한 여러 앱을 동시에 실행하면 물리적인 주변 공간이 금세 좁게 느껴진다. 창을 사용자 주변의 여러 사물 위에 배치하는 것은 번거로운 작업이고 원하는 앱을 선택해 전환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결국 이들 커다란 창을 내방 책상이나 거실 소파 같은 곳의 공중에 띄워 놓게 되고 다른 앱을 사용하려면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처음에는 이런 경험이 놀랍다. 하지만 어느새 "이 많은 창을 어디에 둬야 하지?" 묻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홈 뷰는 앱 관리 측면에서 부족하고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도 없다. 비전OS 2.0에서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부분이다. ⓒ Foundry

창 관리 기능이 부실한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비전 프로에는 맥의 미션 컨트롤(Mission Control)처럼 모든 창을 모으고 정렬하는 기능이 없다. 아이패드의 스플릿 뷰(Split View) 같은 것도 없어서 두 앱을 나란히 붙여서 사용할 수도 없다. 스테이지 매니저(Stage Manager) 같은 기능이 있다면 여러 앱을 하나의 스택으로 묶은 후에 이 스택 사이를 전환하며 앱을 찾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실행하려는 앱의 창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새로운 공간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이런 기능도 역시 없다.

앱 관리의 문제는 현재 실행하고 있는 앱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홈 뷰는 사용할 수 있는 앱의 작은 아이콘을 벌집 형태로 정렬해 보여준다. 첫 페이지는 애플이 만든 앱으로 꽉 차 있고 위치도 고정돼 있다. 두번째 페이지부터 사용자가 설치한 앱이 알파벳 순서로 정렬된다. 그런데 첫 페이지가 알파벳 순서 정렬이 아닌 것이 혼란스럽고, 순서를 변경할 방법이 없어서 매우 불편하다. 특히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에는 독(dock)이 있지만 비전 프로에는 독 같은 것이 없어 당혹스럽다. 비전OS 2.0에서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것은 단연 홈 뷰와 앱 관리 기능이다.

사실 뻔히 보이는 단점과 해결책도 명확하지만, 실제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현실에 앱을 배치하는 경험이 매우 놀라운 것도 사실이다. 당장은 모든 것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앱을 원하는 공간에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유용할지는 비전 프로를 처음 사용하는 순간 직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집안 냉장고에 AI를 활용해 작성되는 장보기 리스트를 고정할 수 있다. 지금은 직접 종이에 쓴 메모를 자석으로 붙여놓는 식이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찬장과 냉장고를 열 때마다 부족한 식재료가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고 식료품점에 갈 때 이 내용을 팝업으로 보여준다. 이 팝업은 사용자를 계속 따라다니고 식료품점에 도착하면 필요한 물품이 있는 진열대가 강조돼 표시된다.

이처럼 현재는 구현된 기능이 아니라고 해도, 컴퓨터가 만든 그래픽을 실제 세계와 통합해 상호작용과 지능, 위치, 개인적인 선호도를 결합했을 때 이 기술의 가능성은 무한히 확장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세상을 상상했지만, 비전 프로는 상상을 현실로 실제로 만들어 줄 것처럼 느껴지는 첫 제품이다. 어쩌면 이런 세상이 도래하는 것도 그리 머지않은 미래일지 모른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영상 통화를 하면 상대방은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디지털 인물을 보게 된다. 필자가 만든 페르소나는 실물보다 나은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한 느낌이다. ⓒ Foundry

이밖에 비전 프로에서 누락됐거나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앱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일단 계산기와 날씨 앱이 없다. 나의 찾기(Find My)로 비전 프로 제품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친구나 다른 애플 기기를 찾는 것도 안 된다. 애플의 자체 앱 중 '공간' 컴퓨팅에 가장 잘 어울릴 앱이 바로 지도일텐데 현재는 아이패드 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전부다. 연락처 앱도 기이하다. 앱은 없지만 앱 내에서 연동해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단지 비전 프로에서 연락처를 관리할 수 있는 앱이 없을 뿐이다. 홈 뷰의 왼쪽에 피플(People) 섹션이 있다. 비전 프로에는 페이스타임 앱이 없고, 이 피플 섹션에서 페이스타임을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보면 비전 프로는 아직까지 미완의 상태인 것처럼 느껴진다. 일부 앱과 경험은 매우 뛰어나지만, 일부는 불완전하거나 아예 누락됐다.
 

비생산적인 생산성

비전 프로의 키보드는 놀랍도록 조악하고 URL을 입력하는 것 이외에는 거의 쓰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문장을 입력하려면 블루투스 키보드가 필수다. 음성 받아쓰기도 가능하지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같은 기능보다 훨씬 떨어진다. 수정하기 위해 '응시하고 꼬집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비전 프로의 키보드는 끔찍하다. 짧은 검색어를 입력하는 정도만 쓸 수 있을 정도다. ⓒ Foundry

따라서 비전 프로를 이용해 업무를 보려면 최소한 키보드와 트랙패드가 필요하고 맥북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맥북을 사용하는 방법은 이렇다. 비전 프로를 착용한 상태에서 비전 프로와 같은 애플 ID로 로그인된 맥북을 바라보면 맥북 화면의 바로 위에 '연결(Connect)' 버튼이 나타난다. 이를 꼬집어 선택하면 공중에 떠다니는 4K 가상 화면이 나타난다. 이 화면의 화질은 매우 뛰어나고 지연시간이 놀랍도록 작다. 단, 이 화면은 1개만 사용할 수 있고 실제 맥북의 화면은 까맣게 꺼지기 때문에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전 프로 제어판을 이용해 맥 데스크톱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방식 때문에 이 기능은 더 큰 화면이 필요하지만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만 유용하다. 그래서 비전 프로가 아니라 보조 모니터를 하나 더 구매해 사용하는 것이 더 빠르고 선명하다. 거의 모든 면에서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더구나 오디오 문제도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리가 비전 프로 스피커가 아닌 맥에서만 재생됐다.
 
비전 프로를 거대한 가상 맥 모니터로 사용하는 것은 최고의 생산성 기능이지만, 실제 써보면 생각한 것만큼 유용하지는 않다. ⓒ Foundry

이 방식으로 맥을 사용하면, 맥 화면 좌우로 비전OS 앱 혹은 아이패드 앱을 추가해 동시에 쓸 수 있다. 맥 화면의 작업에 집중하면서 왼쪽에는 노트 앱 창을, 오른쪽엔 사파리 창을 띄어 놓고, 약간 먼 곳에는 스트리밍 영상 재생 화면을 배치하거나 애플 뮤직을 틀어놓는 식이다. 이들 창 중 하나를 응시한 후 유니버설 컨트롤 기능을 통해 맥의 키보드와 트랙패드로 해당 앱을 제어하거나 필요한 내용을 입력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마치 마법 같아서 처음에는 생산성이 크게 개선될 것처럼 느껴진다. 마우스가 비전 프로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맥과 연결된 마우스조차 맥 디스플레이 창에서만 작동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것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다.
 
응시하고 꼬집기 인터페이스 적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멀티터치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다. ⓒ Foundry

하지만 작업을 계속 하다보면 맥 버전보다 더 낮은 버전의 비전 프로 앱을 사용하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야 하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떠다니는 창들이 서로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몇 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비전 프로용 앱을 실행하는 것보다는 맥에서 새 창을 여는 것이 더 빠르고 사용하기도 쉽다.

예를 들어, 필자는 이 리뷰를 작성하면서 맥북 가상 화면에 노트 앱을 띄워 놓았다. 가상 맥북 화면 왼쪽에는 떠다니는 비전OS 사파리 창을 배치하고 점심으로 먹을 윙을 주문하려 했다. 사이트를 찾아 주문하는 것이 가능했고 주소가 자동으로 완성되고 애플 페이 결제도 할 수 있었다. 비전OS 키보드로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할 필요는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실제 커서와 키보드를 이용했다면 어땠을까? 전체 주문 과정이 훨씬 더 빠르게 편했을 것이 분명하다. 비전OS에서 응시하고 꼬집는 방식으로 주문하는 것과 비교하면, 맥에서 브라우저 탭을 새로 열어 주문하는 데는 절반 시간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더구나 맥에서는 사파리 이외에 원하는 브라우저를 골라 사용할 수 있다.

애플 비전 프로의 경험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처음 몇 번은 너무 신기해서 이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폰이나 맥에서 같은 작업을 더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전OS 기능이 앱이 개선된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단절된 미디어 경험

비전 프로 앱 경험 중 사용자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디어다. 인상적인 내장 스피커와 공간 오디오, 훌륭하고 선명한 디스플레이, 마법 같은 머리와 손 트래킹 기능 덕분에 영상을 보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애플 TV+나 디즈니+를 이용하든 혹은 브라우저에서 넷플릭스를 보든(현재는 비전 프로용 넷플릭스 앱이 없다) 상관없이 비전 프로는 2D 콘텐츠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기기다. 화면이 밝고 선명한 것은 물론 색감, 대비 모두 훌륭하다. 심지어 일부 앱은 영상을 볼 때 전용 가상 환경을 제공한다. 디즈니 엘 캐피탄 극장(Disney El Capitan Theatre), 영화 스타워즈의 무대인 타투인(Tatooine) 행성의 사막이 대표적이다. 3D로 만들어진 영화는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아바타 최신편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D 같은 영화를 보면 극장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

애플이 TV 앱을 통해 지원하는 180도 3D 비디오 '공간' 영상도 빼놓을 수 없다. 몰입적인 공룡 영상, 눈앞에서 보는 코뿔소 등이 있고 특히 얼리샤 키스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영상에서는 그의 피아노 바로 옆에 서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운 경험이다.

현재 이런 기술과 영상은 이미 상용화돼 있다. 유튜브, 데오VR(DeoVR) 같은 사이트에 수많은 180도, 360도 영상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웹에서 이들 영상을 보는 것은 제대로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고 애플이 웹XR(WebXR) 표준을 제대로 지원해야 비전 프로에서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 스페이셜 플레이어(Moon Spatial Player), 리얼리티 플레이어(Reality Player) 같은 독립적인 동영상 재생기가 있지만, 아직은 완성도가 떨어지고 버그도 많다.

미디어 경험 관련해서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경험이 '얼마나 고립돼 있는가'다. 혼자 미디어를 즐기고 싶을 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TV나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른 사람과 연관된 매우 사회적인 경험이다. 필자가 디즈니 극장을 아내에게 보여줬을 때 그의 첫마디는 "비전 프로로 영상을 보면서 고개를 돌려 바로 당신을 볼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수백 km 떨어져 있어도 바로 옆에 앉아서 같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가상 극장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 Foundry

이는 비전 프로로만 할 수 있는 완벽한 경험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아직 실제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애플은 이미 페르소나, 셰어플레이, 공간 오디오 등 관련 기술을 모두 갖고 있고 이를 잘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애플은 비전 프로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개발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 가상 환경에서 영상을 보는 것은 이미 많은 다른 VR 헤드셋이 지난 수년간 지원해 온 기능이므로 차별화가 필요하다.

비전 프로나 아이폰 15 프로를 이용해 촬영한 공간 영상은 놀랄 만큼 멋지다. 마치 과거의 어느 순간을 실시간으로 재구성해 내가 다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몇번 사용해 보니 1.2~2.4m 거리에서 가장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고,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몇 가지 제약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평면 영상 대비 추억을 다시 떠올리는 훨씬 더 좋은 방식인 것은 분명하다. 약간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공간 영상이야 말로 비전 프로의 '킬러 기능'에 가장 가깝다.
 

천장을 뚫어버린 가격

보통 가격을 기준으로 제품을 리뷰하지는 않지만, 비용은 언제나 고려 대상 중 하나이고 특히 애플 비전 프로에서는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가격 자체가 미친듯이 비싸기 때문만이 아니다. 가격에 이 제품의 모든 요소가 다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헤드셋 자체만으로도 3,499달러 가치를 준다고 주장한다. 메타 퀘스트 3보다 7배나 비싸지만, 수준이 다른 디스플레이와, 손과 눈 추적, 질적으로 다른 고품질 경험을 제공한다는 고려하면 일리가 있기는 하다. '어느 정도'는 말이다.

하지만 비전 프로와 관련된 다른 제품 가격을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제품 종류와 관계 없이 대부분 199달러로 일괄 책정했다. 예를 들어 휴대용 케이스는 149달러도 비싸게 느껴질 정도인데, 무려 199달러다. 추가 배터리는 69달러짜리 보조 배터리보다 기능도 용량도 적은데도 역시 199달러다. 일부 폼과 천, 자석으로 만든 라이트 씰 역시 '애플식' 가격표가 붙었다. 199달러다. 그나마 추가 싱글 혹은 더블 밴드는 99달러인데, 적절한 가격대보다 2배는 더 비싼 느낌이다. 최대한 많은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가격 정책처럼 보이는 이유다.

비전 프로 본체와 주변기기 가격이 이렇다보니 앱 개발 업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비전 프로에 4,000달러 가까이 쓰는 사람이라면, 앱에도 돈을 물 쓰듯 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듯하다. 주노(Juno) 앱이 대표적이다. 비전 프로용 유튜브 앱이 없는 상황에서 주노는 유튜브 API를 일종의 래핑한 앱이다. 비싸야 1.99달러면 충분할 텐데 무려 4.99달러다. 다른 앱도 비슷하다. 크로톤(Crouton) 같은 요리 앱처럼 비싼 요금으로 구독하지 않으면 사실상 비전 프로에서는 쓸모 없는 앱도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비전 프로용 앱을 내놓은 크로톤이 비전 프로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요리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이라면 공간 컴퓨팅이 우리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미래라고 확언하기 힘들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앱 구독에 많은 돈을 쓰는 일부 부자들의 장난감에 더 가깝고, 신기술의 대중화와도 거리가 멀다. 필자가 더 합리적인 가격의 공간 컴퓨팅 기기는 물론, 더 합리적인 비용의 공간 컴퓨팅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이유다.
 

개선해야 할 부분

비전 프로에서 개선돼야 할 점을 정리하자. 가격은 시작일 뿐이다. 비전 프로가 더 대중화되려면 애플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비전OS 문제부터 보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앱을 주변 환경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고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의 시각 내에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위젯을 두는 형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단절된 경험 대신 더 사회적인 부분이 반영돼야 한다. 몰입적인 셰어플레이 영상 감상, 페르소나 개선, 진정한 서드파티 공간 소셜 미디어 등이 대표적이다. 창 관리와 텍스트 입력도 보완해야 한다. 더 다양한 제스처와 멀티터치가 필요하다. 나의 찾기와 날씨, 계산기를 비롯해 비전OS가 현재는 지원하지 않는 앱을 추가해야 하고 아이패드 앱의 진정한 공간 버전을 내놓아야 한다.

이런 문제 중 일부는 하드웨어 개선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비전 프로의 시야각은 너무 좁아서 마치 스쿠버 마스크를 쓰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시야 바깥 부분에 검은 테두리 확연하게 보인다. 애플은 시야각 사양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100도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무게도 1/3 정도 줄여야 하고 패스스루는 특히 밝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부분은 하드웨어 자체를 업그레이드해야 해결할 수 있다.

현재 비전 프로는 기본적으로 집 혹은 사무실 내에서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다. 셀룰러 연결을 지원하지 않고 앱이 사용자를 따라다니게 하거나 움직이는 사물에 앱을 고정할 수 없다. 혹시라도 소셜 미디어에 비전 프로를 밖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누군가를 본다면 그들이 누리는 실제 경험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배터리 팩에 사용한 USB-C 포트는 전원과 데이터 용도로 모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물리적인 보안 키, 마이크와 오디오 인터페이스, HDMI 입력(어댑터 포함), 외장 스토리지는 물론 여러 가지 유용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USB-C 포트를 통해 전원 외에 데이터를 주고 받는 것은 왜 안될까? ⓒFoundry
 

존재 이유 증명은 여전히 숙제

애플 비전 프로는 너무나 흥미로운 제품이어서 하루 종일 떠들 수 있을 정도다. 애플의 최신 제품이면서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오리지널 맥 출시 이후 애플이 내놓은 가장 비싼 제품이기도 하다. 완전히 새로운 상호작용으로 조작하는 기기이자, 사회적 관습을 시험하는 기기이고 동시에 법적, 규제적 문제에 대한 논쟁도 촉발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 1세대 제품은 구매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필자가 비전 프로를 사용해 본 후 내린 최종 결론은 적어도 당장은 추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의 이유는 당연히 가격이다. 다른 애플의 1세대 제품은 경쟁 제품보다 크게 비싸지 않았는데 비전 프로는 타의 추종이 불가능할 정도의 가격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애플 비전 프로가 스스로 존재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비전 프로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은 다른 방식으로 더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다. 지금 비전 프로에는 비전 프로만의 '킬러 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공간 컴퓨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찾아야 한다. 집 주변에 배치한 떠다니는 아이패드 앱 창은 비전 프로의 존재 증명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비전 프로라는 기기와 더 일반적인 의미의 공간 컴퓨팅에 커다란 잠재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리뷰하는 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제품이다. 개념이 아닌 애플 비전 프로 제품은 너무 한계가 뚜렷하고 너무 단절돼 있다. 생산성 기기로든, 엔터테인먼트 기기로든 큰 비용을 치르고 이 공간 컴퓨팅 대열에 선뜻 뛰어들기에는 활용성이 너무 떨어진다. 이런 문제 중 일부는 비전OS와 앱 측면에서 더 완성도 높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는 더 개선된 하드웨어 없이는 불가능하다. '골수' 애플 얼리 어답터조차 소프트웨어가 개선될 때까지 구매를 보류하라고 말하는 이유다. 필자가 일반적인 사용자에게 할 수 있는 최종 조언은 하드웨어까지 개선된 '2세대 제품'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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